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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 지났지만 4·3의 상흔 아직도…행불자 3896명 어디에
해원상생굿 제주평화공원 르포

지난 15일 제주 4ㆍ3 평화공원. 제주예술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해원상생굿이 시작됐다.

굿이 진행되는 동안, 옆자리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던 유족들은 지긋이 눈을 감는다. 두손을 가슴팍에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에서 굿판 앞으로 나와 절을 하는 유족도 있었다. 일부는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와 목도리로 눈물을 훔친다. 아버지를 잃었다는 유족 고모(72ㆍ여) 씨는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지만 지금도 어디 계실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며 “행불자 유족들은 가장 한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제주 4ㆍ3평화교육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원상생굿 모습.

행방불명(행불) 희생자들을 위무하는 해원상생굿이 제주 4ㆍ3 평화 공원에서 15일 열렸다. 해원상생굿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살아남은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는 행사다. 행사를 진행한 제주큰굿보존회 측은 “행불자를 위한 자리인만큼 더욱 신경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성실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날 굿은 유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공원 내 행불자 묘역에서의 ‘영혼 부르기’를 위한 열명식을 시작으로, 오후부터는 우천사정 상 교육센터 내에서 진행됐다.

영혼부르기가 진행된 행불자 묘역에는 희생자 3896명을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그리고 여섯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제주, 이어 경인과 영남, 호남, 그리고 대전과 예비검속 구역 등이다. 제주 외 다른 지역은 희생자들이 ‘끌려간’ 곳이다.

당시 수용시설이 부족했던 제주도에서는 4ㆍ3 사건으로 끌려온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이 됐다. 이들 희생자수가 공식적으로 집계된 이들만 1661명에 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중론이다. ‘제주4ㆍ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을위한특별법’이 제정ㆍ공포됐고,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지만,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관련 사업은 지지부진해졌다. 지원금들도 상당수 삭감된 상황이다.

현장에서 만난 유족들은 제주 4ㆍ3사건에 대한 빠른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한편, 정부와 예술문화재단에 대한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행사도, 진상규명도 모두 유족들과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외 위령제단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이날 행사는 ‘우천 사정’을 이유로 실내 행사로 전환됐다. 일부 유족들은 “왜 상의도 없이 장소를 바꾸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날 묘역에서 만난 유족 김필문(72) 씨도 이중 하나다. 김 씨의 아버지는 4ㆍ3 사건 당시 15년형을 선고받고 대구 감옥으로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김 씨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밭일을 해야할 만큼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김 씨는 “연좌제가 있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빨갱이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살았다”며 “(4ㆍ3 사건은) 설움에 피맺힌 역사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나 보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 양영호(75) 씨도 “준비위원회가 진행과정을 유족과 협의하지 않고 있다”면서 “오늘 행불자 유족이 오는 자리라 사연들이 구구절절한데, 내년에는 유족과 협의해 행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제주=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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