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플러스] 제주사람 사는 어디든 4월의 사연 없으랴

[휴플러스] 제주사람 사는 어디든 4월의 사연 없으랴
4·3을 기억하는 그 곳
  • 입력 : 2018. 03.29(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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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도화선 발포사건 현장 관덕정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 너분숭이
4·3 후유장애 무명천 할머니 집터
영화 '지슬' 배경 된 동광 큰넓궤
4·3추념식 장소 봉개동 평화공원


비행기를 타고 내려 제주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70년전 그 날의 사연이 스며든다. 그 날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4·3을 말한다. 제주국제공항이 들어선 옛 정뜨르비행장은 1949년 군법회의와 1950년 예비검속에 걸려 희생된 사람들이 학살돼 암매장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 관문에서 시작된 무자년의 기억은 이 섬 곳곳에 드리운다. 제주 사람 사는 어디든 4월은 있다.

70주년 4·3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쉴새 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즈음이다. 유명 배우들은 4·3을 말하며 동백꽃 배지를 달자고 권한다. 4·3의 해결을 위해 아직도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4·3을 기억하게 만드는 공간들이 있었다. 제주4·3평화재단의 '제주4·3아카이브'를 참고해 그 현장을 소개한다.

▶제주도 역사의 앞마당, 관덕정 광장=관덕정을 중심으로 한 성내는 김석범의 장편 '화산도'의 주요 배경이다. 제주4·3발발의 도화선이라는 1947년 3·1집회가 북국민학교에서 시작돼 관덕정에서 사건화됐다.

4·3 발발의 도화선인 3·1집회 발포사건의 장소인 관덕정.

이날의 발포 사건은 해방 후 미군정과 제주민의 갈등이 폭발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항의로 1947년 3월 10일부터 제주지역에서 한국에서는 유례가 없었던 민·관 총파업이 벌어진다.

4·3의 와중에는 무장대사령관 이덕구의 시신이 전시되는 등 격동의 공간이었다. 제주 문충성 시인의 '숟가락에 대하여'란 시에는 '4·3때/ 관덕정 앞/ 나무 십자가 만들어 매달아놓은/ 이덕구 죽음/ 윗호주머니에/ 꽂혀 있던/숟가락/ 파르스름 녹슬어 있었다/ 어째서 우리에게/ 그 숟가락 보여줬을까'란 구절이 나온다. 4·3이 끝난 후에는 제주지역의 시민과 학생들이 끊임없이 펼친 민주화운동과 4·3진상규명 운동이 관덕정 광장에서 피어올랐다. 올해로 25회째인 제주민예총 4·3문화예술축전의 행사장으로도 몇 차례 쓰였다.

▶너분숭이 4·3 기념공원=1978년 발표된 현기영의 '순이삼촌'은 군사독재시설 금기에 도전한 소설이었다.

너분숭이 4·3 기념공원에 세워진 '순이삼촌' 문학비.

1949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학살을 명료한 언어로 드러내며 문학으로 4·3의 진실을 알렸다. "아니우다. 그대로 그냥 놔두민 이 사건은 영영 매장되고 말거우다. 앞으로 일이십년만 더 있어봅서. 그때 심판받을 당사자도 죽고 없고, 아버님이나 당숙님같이 증언할 분도 돌아가시고 나민 다 허사가 아니우꽈? 마을 전설로는 남을지 몰라도."라는 '순이삼촌'의 한 대목이 의미롭다.

북촌 주민들이 밭일을 하다가 돌아올 때 쉬어가던 넓은 팡이 있어서 '너분숭이'라 불리는 곳에는 애기무덤이 모여있어 그 시절 참혹했던 대학살을 증언한다. 작은 기념관, 소설 '순이삼촌' 문학비도 세워졌다.

▶진아영 할머니 집터=진아영 할머니는 무명천 할머니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고인은 4·3의 비극을 온 몸으로 증언한 이였다. 1949년 1월 12일 한밤중에 날라든 총탄에 아래턱을 맞아 극적으로 살아난 할머니는 그 일로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싼 채 살아야 했다. 턱이 소실되면서 아파도 아프다 말할 언어를 빼앗겼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졌다. 제주 허영선 시인의 '무명천 할머니'란 시의 한 구절처럼, 허구한 밤 뒤채이던 그 고통을 당해보지 않고 어찌 알까.

무명천 할머니는 한평생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살다가 2004년 향년 90에 생을 마쳤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가 꾸려져 2008년 3월 선인장 마을인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의 할머니 집을 전시관으로 바꿔놓았다.

▶큰넓궤=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의 큰넓궤와 도엣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이다.

제주4·3을 배경으로 한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중산간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이 시행된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동광 주민들이 이곳에서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다. 이 굴로 찾아든 사람은 120명이 넘었다. 어린아이들이나 노인은 이 굴속에서 살았고 청년들은 주변 야산이나 근처의 작은 굴에 숨어 토벌대의 갑작스런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거나 식량이나 물 등을 나르는 일을 했다.

제주4·3을 배경으로 한 영화 '지슬'의 한 장면.

흑백 화면으로 4·3을 알렸던 2013년 개봉작 제주 오멸 감독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는 큰넓궤를 배경으로 했다. 이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산 속으로 피신하던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4·3평화공원=제주시 봉개동에 자리잡은 4·3평화공원은 4월 3일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곳이다. 2002년 3월 조성 사업을 시작해 2008년 2월 공사가 마무리됐다.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는 공간이자 미체험 세대를 위한 평화·인권 교육의 장으로 위령제단, 위령탑, 추념광장, 위패봉안실, 평화기념관 등을 갖췄다.

이중에서 4·3평화기념관은 4·3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사건의 흐름을 따라 역사의 동굴, 바람타는 섬, 후유증과 진상규명 역사, 새로운 시작 등으로 꾸몄다. 다랑쉬굴 참상을 재연한 특별전시관도 만들어졌다.



“4·3, 하나된 나라 꿈꾼 민중운동”


한결같이 뚝심있게 스물다섯해
제주민예총 4·3문화예술축전
내일부터 문예회관 일대 펼쳐


제주4·3을 말하는 일에 색깔론을 덧씌우며 탄압하던 시절에도 그들은 한결 같았다. 50주년, 60주년이 아니어도 그들은 4월을 더 많은 사람들 앞으로 데려가기 위해 움직였다. 이맘때면 4·3영령들을 위무하는 제를 올릴 듯 문화예술제를 치렀다. 스물다섯번째를 맞는 제주민예총(이사장 강정효)의 4·3문화예술축전이다.

4·3 70주년이 되는 올해는 '기억투쟁 70년을 고함'이란 주제로 31일부터 4월 3일까지 문예회관 일대에서 4월을 이야기한다. "4·3은 제주에서 일어났지만 제주만의 사건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미군정까지 이어져오는 적폐를 청산하고 하나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섰던 민중운동이었다." 문학으로, 미술로, 마당굿으로, 소리굿 등으로 4·3을 알려온 제주민예총이 70주년 4·3을 맞으며 내놓은 '4·3문화운동'의 새로운 과제다.

문예회관을 찾으면 4·3평화예술난장(3월 31~4월 1일 오후 1시), 4·3 역사 거리굿 '해방'(4월 1일 오후 4시), 4·3역사 집체극 '한라'(4월 1일 오후 6시30분), 마당극 '사월굿 헛묘'(3월 31일 오후 7시), 소리굿 '한아름 들꽃으로 살아'(3월 31~4월 1일 오후 3시), 극단 오이의 '4통 3반 복층사건'(4월 2~3일 오후 3시), 뮤직 토크 콘서트(4월 3일 오후 5시30분), 4·3 기록 사진전(3월 31~4월 30일), 예술로 들춰낸 4·3의 기억전(3월 31~4월 12일), 4·3 그들의 기억전(4월 13~30일)을 만날 수 있다. 청소년 4·3문화예술마당은 4월 3일 낮 12시부터 시작된다. 4월 2일 오후 6시에는 전야제가 예정되어 있다.

4·3 70주년 추념 시화전은 31일부터 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다. 4·3미술제는 4월 3일부터 예술공간 이아 등에서 막이 오른다. 문의 75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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