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70주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 70주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8.04.03. 오전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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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재원 /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 추은호 / YTN 해설위원

[앵커]
이 시각 현재 제주 4.3평화공원에서는 4.3 추념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추은호 해설위원,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와 함께 자세한 내용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 4. 3사건 70년인데요.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 4.3 사건 70주년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기자]
일단 제주 4.3사건으로 인한희생자가 당시 제주 인구가 30만 명이었는데요. 지금 정부에서 확인한 공식 피해자가 1만 4000명입니다. 그래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을 합치면 행방불명자 합쳐서 거의 3만 명 정도 인구의 10%가 피해를 입었다고 추산이 되는데요.

물론 이념 대립이라든가 그리고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그 갈등에 의한 것이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가장 아픈 것은 국가 공권력이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라는 점이 가장 아픈 대목입니다.

[앵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추념식 현장에서 기념사를 할 예정입니다.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4.3을 잊지 않았고 여러분과 함께 아파한 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침묵의 세월을 딛고 이렇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습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할 세월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습니다.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많은 단체들이 4.3을 보듬었습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의 승리가 진실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습니다.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습니다.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습니다. 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그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앵커]
지금까지 제주 4. 3평화공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4.3 사건 추념사 함께 보셨습니다. 관련 내용 현장 화면과 함께 들어오는 대로 계속 보여드리고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차 교수님, 먼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가 눈에 띕니다.

[인터뷰]
그렇죠.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에 대통령으로는처음 이 4. 3기념식의 추념사를 직접 하셨습니다. 물론 2006년도에 노무현 대통령이 여기에 대한 4.3에 대한 말씀을 하셨지만 당시는 4. 3기념식에 가신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을 해서 추념사를 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도 지금 4.3의 원인에 대해서 국가의 폭력에 의한 것이다라는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그 성격을 규정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사과를 이야기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과의 바탕 위에서 국가의 배상과 보상 그리고 나아가서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지금 이 4. 3의 역사를 앞으로 우리 역사 발전의, 대한민국 발전의 하나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 이념을 넘어선 보수와 진보의 정의와 공정을 토대로 한 경쟁을 통해서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 인권까지 만들어내자는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그런 아주 긍정적인 메시지를 말씀하시면서 제주에 드디어 70년 만에 봄이 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앵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의미가 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4. 3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린다라는 측면이 있지 않겠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하셨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4. 3에 대한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고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에서 직접 현직 대통령으로서 또다시 사과를 현장에서 했다라는 그런 의미가 있고요. 그리고 사실 4.3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그리고 희생자를 이렇게 파악하는 과정들은 상당히 진척이 많이 됐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과정은 4. 3사건의 최종적인 궁극적인 마무리는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 그리고 제대로 된 위로 그리고 화합의 모멘텀들을 만드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배상과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고요. 그런 과정들이 앞으로 특별법 개정을 통해서 진행이 돼야 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희생자들에 대한 치유 문제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진상규명은 됐지만 책임자 처벌이라는 문제는 오래전 문제라서 책임자 처벌까지 가기에는 어려울 거고요. 그리고 희생자들을 유죄 판결을 냈던 군사재판을 무효화하는 문제,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마는 그런 과정들이 앞으로 추가적으로 진행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앵커]
사실 4.3에 대해서 과거 저희들이 학교 다닐 때 중학교 때만 해도 4. 3폭동이라고 했었어요, 그때는요. 그런 식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4.3항쟁이라고 또 정의를 하는 분들도 있고요. 결국 4.3 사건, 중립적인 표현으로 4. 3사건이라고 얘기를 합니다마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아직 일치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오늘 당장 각 정당별로 나온 4.3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 자체가 상당히 정당별로 색깔에 따라서 조금 온도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지금 4. 3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냐면 아까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폭력에 의한 억울한 희생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 오늘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남로당 좌익 폭동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명칭에 대해서도 사실은 장제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4.3 사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당의 김동철 원내대표는 4.3항쟁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은 해법에 있어서도 결국 궁극적으로도 상당히 수렴되기가 조금 아직은 상당한 간극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지금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4. 3 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의 조속한 처리를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같은데 지금 그러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오늘 이 이야기를 자의 폭동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보면 오늘의 추념식을 겨냥한 듯한 발언이기는 합니다마는 자유 대한민국이 지금 체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마도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4.3의 이런 성격 규명 자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상당히 강조하는 부분을 어떻게 보면 체제 위기로 강조를 함으로써 일종의 보수 지지층의 표를 집결한다고 할까요. 지금 지방선거가 눈앞에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런 정치적 행보를 하려는 모습으로, 그런 식으로 비치기 때문에 상당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4. 3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법 자체가 어떻게 지금 처리가 될지 상당히 주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 같습니다.

[앵커]
지금 현장을 잠깐 보도록 할까요. 지금 현장에서는 4. 3평화합창단의 제주 4.3사건을 설명하는 많은 노래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죠. 바로 잠들지 않는 남도가 합창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현장 잠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연주가 진행되는 것 같은데요. 4. 3에 대한 정의, 지금 국회에서는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거라고 봐야 되나요?

[기자]
일단은 지금 특별법 개정을 어떻게 하느냐. 배상 문제라든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라는 문제는 남았지만 그동안 지난 2000년, 2003년부터 진행된 진상조사 과정에서 정부 진상조사규명위원회가 내린 것은 단순하게 이것이 남로당의 폭동이다 이런 식으로 한쪽으로 정의를 내린 것은 아니고요.

정부 수립 과정에서 토벌대와 그리고 어떻게 보면 토벌대와 아니면 현지 주민들 사이의 그런 갈등 등, 또 토벌대에 의한 민간인들의 주민들 학살들 이것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라고 다소 중립적으로 지금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 기조는 아마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앵커]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배상이냐, 보상이냐에 따라 이게 배상이라는 것은 손해이지 않습니까? 불법 행위에 의한 어떤 피해를 당했을 때 배상을 하는 차원이고요. 보상이야 국가가 다른 일을 하다가 피치 못하게 손해를 입었을 때, 손실을 입었을 때 주는 어떤 경제적인 지원 아니겠습니까? 그 정의를 놓고도 상당히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인터뷰]
그렇죠. 오늘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4.3의 원인을 국가 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된 그런 사건이라고 지금 규정을 했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사건진상 규명 및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아마 국가의 배상 문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논리적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자유한국당이 지금 거의 남로당의 좌익 폭동에 의해서 이 사건이 유발됐고 이것으로 인해 양민이 희생됐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배상은 몰라도 보상까지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바로 그 때문에 그런 측면들을 고려해서 자유대한민국이 체제 위기의 봉착했다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 때문에 바로 이 부분을 둘러싸고도 또 다른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조금 섣부르지만 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드네요.

[앵커]
결국 4.3 유족회가 있고요. 그다음에 제주경우회가 있었는데 두 단체가 화해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어느 정도. 일단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들리는 노래죠. 잠들지 않는 남도, 잠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이 곡은 안치환 씨가 만든 곡이죠. 작사작곡한 곡인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2집 앨범에 수록되면서 많이 알려진 곡입니다. 그동안 4.3사건에 대해서 상징적으로 연주됐지만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게 2016년이거든요. 2016년에는 4. 3추념식에 연주가 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연주되지 않다가 올해 다시 추념식의 공식곡으로 이렇게 연주가 되고 있는 아주 뜻깊은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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