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과 국민의 힘으로, 역사의 봄을 만들어 갑시다!”
-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출범선언문
오늘은 98년 전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며 모두가 함께 일어섰던 3·1 절입니다.
그리고 70년 전, 오늘 이 곳 관덕정에서 제주민중들 역시 자주독립을 외쳤던 3·1 정신을 이어갔습니다. 잘못된 권력에 대해서, 불의에 대해서 제주민중의 외침으로 일어섰습니다.
오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그 외침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내년이면 제주4·3 70주년이 됩니다. 당시 4·3을 온몸으로 겪으며 고통 속에 한 생을 살아내야 했던 분들은 대부분 생을 달리 하셨습니다. 남은 생존자들도 80~90대의 촌로(村老)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연대기적으로 4·3 당시 생존자가 존재하는 않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제주 4·3은 이제 양지로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에 4·3특별법이 제정되어 공식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국가권력에 의한 참혹한 인권유린과 대량학살임이 인정되어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여 사과했습니다. 희생자들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폭도'라는 낙인을 벗었고, 유족들은 비로소 마음껏 소리 내어 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4·3평화공원이 조성되어 희생자들의 위패가 안치되고 평화재단도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로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신원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진실의 빛은 스스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수 십 년간 유족들을 비롯한 도민들과 국민들의 힘을 모은 처절한 투쟁 속에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제주4·3은 아직도 잠들 수 없는 함성입니다. 제주4·3의 진실과 명예회복이 완전하게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4·3을 폄훼하는 세력들의 준동은 여전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교과서의 4·3 내용마저 축소하고 왜곡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국가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였음이 드러났음에도 실질적인 피해자, 희생자에 대한 구체적인 배상방안은 여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청산의 보편적인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한마디로 가장 중요한 ‘정의(justice)의 원칙’이 빠진 반쪽짜리 명예회복입니다. 사법적 처벌은 논외로 하더라도 주요 가해자의 범죄 사실 기록과 공표, 가해에 근거한 서훈의 취소 등 역사적, 도덕적 단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진상조사보고서에 분명히 기록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국 교도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생존 수형인들도 아무런 구제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제주 4·3 70주년은 역사적 비극으로서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 맞서 그동안의 성과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피해에 대한 배·보상과 가해자에 대한 역사적 단죄, 미국의 책임 인정과 이행 등 정의로운 과거 청산을 완결할 돌파구를 열어야 합니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누워있는 백비에 이름을 새겨 일으켜 세우기 위한 공론화도 시작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승화되어야 할 4·3의 진실을 온 국민들과 세계인들과 함께하는 일도 본격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촛불항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낡은 기득권 체제의 실상이 드러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체제의 유지를 위해 왜곡시키려고 했던 역사도 촛불의 눈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지난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역사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을 국민들과 함께 제기하고 해결할 기회입니다.
계절의 봄은 스스로 찾아오지만 역사의 봄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4·3의 진실을 덮고 반세기를 넘길 수 없다고 힘을 모았던 제주도민들과 국민들과 함께 하려 합니다. 4·3의 정의로운 해결과 4·3 운동의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함께 힘 있게 손잡아 주십시오.
2017년 3월 1일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